우리 아이들이 아플 때, 아이들을 치료해 줄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소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최종 지원율은 25.5%를 기록했다. 하반기 상급년차 전공의 모집 지원율은 더 처참하다. 전국 40개 수련병원의 모집 정원은 총 258명이었지만 지원자는 단 2명이었다. 필수 의료 과목인 소아청소년과는 이미 벼랑 끝에 내몰렸다. 붕괴되고 있는 소아 의료체계, 그 원인은 무엇이고, 그 해법은 무엇일까.
■ 소아 생명의 최전선을 지키는 의사들, “소아 심장 수술할 의사 없어지는 거죠”
해마다 2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심장질환 수술을 받는다. 그러나 소아 심장을 수술할 수 있는 전문의는 전국에 15명뿐. 김웅한 소아흉부외과 교수도 그 중 한 명으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 베테랑 집도의다. 집도 전 아이의 수술이 잘 되기만을 생각한다는 김 교수는 수술실에 들어간 지 7시간도 지나서야 수술실에서 나왔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외래 진료를 보러 발걸음을 옮기는 김 교수. 하지만 그의 요즘 가장 큰 걱정은 따로 있다. 자신이 은퇴하고 나면, 대를 이을 의사가 없진 않을까. 0명, 이 병원의 소아흉부외과 전임의에 지원하는 의사가 3년째 0명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병원은 우리나라의 ‘마지막 보루’였다고 한다. 지금 소아 심장을 책임지고 있는 열명 남짓한 전문의 대부분이 김 교수처럼 50대인 상황. 그들이 은퇴하고 나면, 2천 명 넘는 작은 심장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뇌혈관 질환을 다루는 소아신경외과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전국에 단 두 명뿐이라는 소아신경외과 전임의 이종석 씨는 “부담 반, 걱정 반”이라며 “제가 잘못해서, 저에서 (소아신경외과의) 대를 끊게 하고 싶진 않다”고 전했다.
■ 이미 붕괴된 지방 소아 의료체계... 중증 환자들, 병원 찾아 300km
전라남도 광양시에 사는 김지유 씨는 매주 전자레인지보다도 큰 젖병 소독기를 챙겨 서울을 향한다. 생후 9개월밖에 안 된 아들, 시훈이의 암 치료를 위해서다. 온 가족이 광양에서 서울까지, 4시간 넘게 차를 타고 상경한다. 병원에서 입원이 가능하다 연락이 왔을 때 출발하면 너무 늦어 병실을 놓쳐버리기에, 전날 밤 미리 올라와 낯선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시훈이네. 이번에도 입원하기까지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앞으로도 300km 넘는 거리의 병원을 다녀야 하는 시훈이. 지방의 소아 중증 환자들은 병원 가는 길이, 건강해지는 길이 까마득하다.
■ 소청과 전공의 부족... 교수는 당직 서고, 2차 병원은 과부하
양유진 소아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오늘도 점심을 거른 채, 외래 진료를 마쳤다. 하지만 곧장 의국으로 가 당직을 설 준비에 나섰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부족해지자, 75%의 병원에서 교수들이 직접 당직을 서며 밤샘 진료를 하는 실정이다. 양 교수의 병원에는 지금 5명의 전공의가 있지만, 내년 2월에는 전부 퇴국할 예정. 제작진이 만난 의사들은 “내년이 진짜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아청소년과는 어쩌다 기피 과목이 됐을까. 제작진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부족 현상은 대형 종합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2차 병원인 아동병원, 1차 병원인 동네 의원까지도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이미 그 연쇄반응이 나타난다는 한 아동병원을 찾았다. 원래 아동병원은 소아 의료체계의 허리 역할을 담당하며 경중증 환자들을 책임져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소아 환자를 받아주지 않자 이곳으로 응급 및 중증 환아들이 몰리는 상황. 급기야 서울에 사는 아이도 충남 천안까지 내려와 응급 치료를 받고 입원한다고 한다. 전국 45개의 상급 종합병원 중 소아가 24시간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단 12곳인 현실, 그 현실의 무게를 아동병원이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 소아과 오픈런? “남들이 다 없어져서...코로나19 때 살아남았기에 지금 환자 보는 것”
오전 9시, 문을 열기도 전이지만 아동병원 앞에는 SNS 맛집에서나 볼 법한 긴 대기 줄이 늘어섰다. 소위 ‘소아과 오픈런’은 부모들 사이에선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병원 문을 열자 물밀 듯이 들어오는 환자와 보호자들. 이인규 아동병원장은 그 이유를 묻는 제작진에게 대답 대신 팬데믹 당시 마련한 음압기를 보여줬다.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600여곳이 폐업했는데, 특히 코로나19로 환자 수가 줄며 소아청소년과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 원장의 병원 또한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전 직원들이 9개월 동안 돌아가며 유급 휴직을 해 겨우 버텼다고 한다. 제작진은 이를 못 견디고 끝내 25년간 운영하던 소아과 간판을 내린 이종원 씨를 만났다.
■ 소아청소년과의 미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킬 수 있을까
일본은 2007년 지역 의료격차와 필수의료 인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역정원제’라는 의대 입시 전형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가 학비와 수련 비용을 지원해주고, 의사 면허 취득 후 해당 지역에서 9년 동안 일하면 그 비용 상환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일본은 의무 복무 기간 중에 지역을 이탈할 경우 전문의 자격 취득을 못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지역 잔존율을 99%로 높였다(2018년 기준, 후생노동성). 더불어 일본은 소아 의료체계를 위해 ‘아이들의 건강을 나라가 책임진다’는 철학을 담은 성육기본법을 제정하고 총리 직속의 어린이가정청을 설립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정원제로 의대에 입학해 9년째 일본에서 의료취약지역으로 꼽히는 도치기현을 지키고 있는 마스다 다쿠야 씨는 의무 복무 기간 동안 “그 지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았다”며 “이후에도 지역에 남아 근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사 소멸, 소아과 붕괴가 온다> 편은 8월 18일 밤 10시 KBS1TV에서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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