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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尹東柱) ‘序詩’ 시비 by 천등 이진호 시인의 한국문학비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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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기자 안인철 2017. 8. 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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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지은이 : 윤동주 (1917.12.30 ~1945.2.16)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비를 찾아 연세대학 캠퍼스에 들어선 것은 오후 2시. 오늘처럼 눈부시게 화창한 가을날에도 결코 우울과 탄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짓밟힌 조국을 가을처럼 서럽게 노래하다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윤동주 시인. 

그의 시비(詩碑)앞에 서니 조국과 민족이란 의미가 새삼 되뇌어 졌다.

1968년 11월 3일에 높이 2.5 m 너비 1.5 m 로 연대 학생회가 연희전문시절 기숙사(현재 학교법인 인사처)앞에 「서시」시비를 건립하였다. 

윤동주는 민족의 수난기였던 1917년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 났다. 1938년 연희동산을 찾아 1941년 연희전문 문과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 가 학업을 계속하면서도 항일독립운동으로 민족혼을 노래했다. 그러나 1945년 2월 16일 해방의 기쁨도 모른체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모진 형벌로 목숨을 잃으니 그의 나이 29세였다. 

아우인 윤일주(尹一柱)씨가 설계한 시비 앞면에는 1941년 11월 20일에 썼다는「서시」전문이 윤동주의 자필을 확대해 새겨졌고, 뒷면에는 그의 약력이 간략하게 새겨져 있다.

급우였던 유영(현 76세)님은 ‘동주는 그의 용모가 단정하고 인간이 아름답고 마음이 아름다와 그의 시 또한 아름답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유해는 고향인 북간도 용정에 묻혀 있다. 그토록 고향과 하늘과 별을 그리움과 꿈의 대상으로 노래했던 시인. 바로 그 그리움과 꿈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처절한 슬픔이며 외로움이었으리라.

참으로 안타깝게도 1945년 해방을 몇 달 앞두고 짧은 생애를 마감한 윤동주 시인. 그의 넋이나마 이토록 변화한 조국의 발전된 영광과 후배들의 자유롭고 활기찬 기상으로 얼마간 위로가 될런지?

그의 유해는 고향인 북간도 용정에 묻혀 그를 좋아하는 이들이 자유롭게 찾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해 준다.




글쓴이 : 
한국글사랑문학회장 이진호
동네방네 뉴스
기사제보 : aic31@hanmail.net 
카카오 ID : qr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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